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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유학 온지 100일 지난 후 새롭게 깨닫는 것들

sokki 2023. 12. 17. 09:59

벌써 미국에 도착한지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미국에 박사과정으로 오게 돼서 CS 박사를 하면서 한 학기가 참 빠르게 지나갔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학교 코스웍과 연구에 쫓겨서 빠르게 흘러갔다고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에 온 시간이 어느 정도 된 것 같아, 한국식으로(100일 기념), 오랜만에 블로그에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들을 끄적여 보고자 한다. 

 

내 눈으로 본 미국이라는 나라

나는 미국 보스턴, 그러니까 미국의 동쪽 지역에 살고 있다. 정확히 보스턴은 아니지만 그 주변 지역이라 그냥 보스턴 지역이라고 하겠다. 미국은 과연 큰 나라이고, 많이 발전되어 있는 나라임은 사실이다. 한국에 있으면서야 그런 얘기는 종종 들었고 뉴스를 보나 역사를 배우나 이것이 일반적으로 아는 사실이겠지만, 어디 글로 배운 것과, 직접 본 것이 같겠는가.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는 참으로 실망이 컸다. 이래뵈도 서울 촌놈이고 대한민국의 수도요, 그것도 아주 인기가 많은 강남 사람인지라, 생활했던 환경이 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소위 말하는 "삐까뻔쩍"하는 동네가 전부였던 나로서는 보스턴의 낡아 보이는 도로와 유럽의 풍경과 흡사한 붉은 벽돌의 건물과 집들을 보는 것이 기대에 부푼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었다. 더하여, 처음 미국에 도착한 날부터 나는 학교 측에 신청했던 기숙사가 갑자기 취소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기숙사 관리 부서에 가서 얘기를 나누어야 했는데, 결국에는 내가 원치 않았던 다른 곳에 살게 되었으며 또 바로 입주가 불가능해 내 사비를 들여서 호텔에 약 나흘간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어이도 없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화조차 낼 수 없었기에 학교에서 운영하는 호텔로 가서 바로 잠을 잤던 기억이 있다. 

미국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미흡, 부족함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겠으며, 더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는 사회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큰 착각에 이었고, 내가 느낀 실망감은 앞으로 느끼게 될 압도감과 비교해서는 정말로 작은 단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거대함은 지구본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직접 와서도 많이 느낄 수 있다. 넓은 평야에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모습 가운데 광활하고도 울창하게 펼쳐진 숲의 모습은 참으로 이국적이다. 미국의 대자연은 너무나 경이로워서 때로는 그 너머의 신적인 존재가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경외감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영어를 주로 쓰기는 하나 스페인어, 중국어, 태국어, 캄보디아어, 한국어 등 여러 언어들이 혼재되어 있고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다양성 그 자체다.

 

한국에는 있고 미국에는 없는 것

아직은 한국을 생각하면 여러 그리운 감정들이 섞여서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었으며, 적어도 내가 자라고, 적응하고, 살아온 곳이라 그런지 그냥 그저 잊어버릴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은 뭐랄까, 아주 정사각형 같은 나라라고 해야 할까? 한국은 많이 정돈되어 있고 깔끔하고, 통일성이 많은 나라다. 사람들의 모습도 비슷하다. 사는 방식도 비슷하다. 통일성이 주는 한국 사회의 강점은 아무래도 안정감이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인지 누구나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다. 이미 길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개성을 찾아나가는 식이랄까. 그래서 모범생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사회이다. 그러나 독특한 사람들, 흔히 말해, 돌연변이들이 살아남기엔 너무 좋지 못한 환경이라 하겠다. 

한국 사회는 모범생들을 키워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모범생들에게 보상을 주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모범생들이 살아가기엔 좋은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정답만을 내는 사람들을 키운만큼 창의적인 사람들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가 더 유기적이고, 창조적인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어려움을 겪게 될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도 좀더 유연한 사회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 갈 길이 좀 남은 것 같다. 

 

미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모범생을 배출하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미국이 대단히 분열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에는 한국엔 없는 다양성, 그리고 그에 따른 더 많은 기회들이 있다. 확실히 한국에 비해 미국은 돈이 굉장히 많은 국가처럼 보인다. 내가 알기로 미국의 국민1인당 GDP가 한국의 약 2배 수준이라고 알고 있다. 그만큼 미국이 돈을 많이 버는 사회라는 것일 것이다. 이만큼의 경제적인 여유는 여러측면에서 한국에 비해 더 좋은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단순히 우리가 미국을 따라한다고 해서 한국이 미국만큼 잘 살게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의 다양성과 그 허용성에 대해서 한번은 진지하게 제고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정말 젊은 나라다. 젊고 능력있는 각국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기회를 찾고, 기회를 만든다. 그러면서 사회의 경제가 역동적으로 더더욱 성장한다. 너무나 많은 부분들이 다양해서 오히려 실리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우리도 그런 면들을 좀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오히려 사회의 역동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옴은 정당하다. 그러나 유연함과 창조성을 더더욱 요구하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우리는 그러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

100일이 지난 후 나는 미국에 온것이 대단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내 눈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한국에서 받지 못했던 인정, 더 많은 기회의 발견 등이 이것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만 있으면 정말 한국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한국에 사는 것이 전부이고, 한국에서 먹히는 생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내 얘기는 별로 영양가가 없을테지만, 어떤 이들 중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더 나은 삶을 찾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 와서 보니 그렇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삶이 가장 최선의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조금 더 창조적으로 우리가 믿는대로 살아볼 필요가 있다. 과감하게 도전을 해보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사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도 더더욱 유연해지고 창조적인 것들을 추구하게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