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scribble 섹션에 미국에서 첫학기에 시험 감독을 들어갔던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냥 썰이므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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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하자면, 나는 지도 교수님의 지도아래 평화로운 첫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께서 나를 비롯한 다른 2년차 박사생에게 메일을 보내셔서 교수님께서 강의 하시는 과목의 grader를 신청해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grader 신청을 했는데, 왠지 grader가 아니라 TA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 (하는 일이 좀 많았다!ㅜ..)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이미 부조리한 연구 환경이 어떤 것인지 알고,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 세상엔 완벽한 연구실, 교수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교수님이 하라고 하는대로 TA, 아아니 grader를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기말고사 시험감독을 들어가라고 하셨다. 나야뭐 기말시험 감독이 얼마나 힘들겠다고, 생각해보면 가서 시험지 나눠주고 그냥 학생들 잘 지켜보다가 시험지 다시 받아서 채점하면 되는거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랑 같이 grader를 하고 있는 2년차 박사생이 나한테 중간고사 시험감독을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컨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말에는 조금 더 철저히 컨닝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줘야 할 것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말 시험 감독을 들어가면서 애들이 컨닝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말 시험 당일이 되어 시험 감독을 하러 방에 들어갔는데 이미 학생들이 다 자기 자리를 맡아서 컨닝 준비를 다 마쳐놓은 상태 같았다. 왜냐하면 몇은 자기 가방을 자기 옆에 반쯤 열려진 채로 놔두었고, 몇은 자기 폰을 주머니 속에 놔두어 만지작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 이 때부터 시작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방을 전부 치워 양쪽 벽쪽에 놔두라고 했다. 그리고 핸드폰은 꺼두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자 교실 전체가 웅성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학생들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지만, 나는 공정하게 시험을 치루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특이한 징후가 포착되거든 바로 쫓아내고 0점을 주겠다고. 이렇게 으름장을 놓자, 학생들 전부 쫄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이게 바로 K시험 방식이다, 생각했다...
아, 그런데 친구들이 정말 공부를 한 애가 없는 모양이었다. 시험지를 주자, 어떤 학생들은 허공만을 쳐다보았고, 어떤 학생들은 시험지를 넘기며 의미없는 끄적거림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방안을 조금씩 돌아다녔는데 정말이지 내 생각에는 학생들 중 절반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쳐다보는 것이었다. 시험 시간이 3시간 정도 되었고, 사실 공부를 했다면 1시간 안에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마지막 10분까지 사용하며 시험을 보았다.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거의 컨닝을 허용해줘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래도 공부한 학생들이 있을텐데 그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컨닝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제발 내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떤 학생들은 속삭이며 컨닝을 시도했는데 그것에 대해서 아주 무섭게 주의를 주었고, 또 어떤 이들은 서로 눈치를 주며 답변을 공유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진 빠지는 기말고사가 끝이 났는데 학생들 몇이 내게 찾아와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서 자기가 시험을 못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보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내가 짐작하기로 전체 학생중 80% 가량이 공부를 안 한 것처럼 보였고, 컨닝을 해서 시험을 풀 생각으로 열심히 컨닝 준비를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 길을 아주 막아버렸으니 내가 얼마나 원망스럽겠나.. 실제로 내가 학생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시험 감독했던 학생이 거기서 배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웃으면서 나를 맞이해주었는데, 내 얼굴을 보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아주 차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내가 감독했던 학생들 대다수가 학생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
나는 요새 그래서 혼자 배식하는 코너로 그 친구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가서 혼자 밥을 먹는다. 정말 잘못했다간 보복을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에휴, 어쨌든 나는 이렇게 시험감독을 하고나서 여러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일단 시험 감독을 들어가면 개고생이라는 것.. 그리고 학생들은 열심히 컨닝 준비를 해온다는 것.. 그냥 시험 감독 다시는 안시키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왠지 내년에도 시키실 느낌이라, 조금 슬프다ㅎㅎ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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